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소련 국경분쟁 (문단 편집) ==== 전바오 충돌 ==== || [[파일:external/iconicphotos.files.wordpress.com/ussuri.jpg]] || || 흰 위장복이 소련군, 짙은색 군복이 중국군, 얼어붙은 강에서 벌이는 싸움이다. || 중국군 병사들이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소련군 병사들을 향해 흐루쇼프는 수정주의자라고 국가지도자를 비난하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결국 전바오 섬에서 양국 수비대의 신경전은 육탄전으로 번졌다. 패싸움으로까지 발전된 이 난투극에서 승자는 소련측이었다. 영양상태가 허약했던 중공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격이 더 컸던 소련측이 맨몸 육탄전에서 이기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이렇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군들은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마주친 소련군과 계속해서 패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중 일련의 패싸움에서 중국군 사병 일부가 사망하기도 했다. 체면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중국군은 일반보병인 경비대원들을 최정예 특수부대원들로 모두 교체했다. 교체된 병력은 동북지역을 관장하는 제49야전군에 배속된 특수부대원들이었으며, 난투극을 촬영하기 위해 파견된 기자 역시 특수부대 소속 교관요원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무술 유단자들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소련군은 마주친 중국 경비대원들을 놀려대기 시작하면서 양측간에 다시 패싸움이 일어났다. 물론 소련의 일반 보병들은 실전경험으로나 피지컬로나 차원이 다른 중국군 특수부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패배한 소련군은 부상자들을 데리고 서둘러 퇴각했다. 갑작스런 패배에 당혹한 소련군 경비대장은 퇴각한 부하들로부터 정황을 보고받았다. 그리고 격투술 솜씨 등을 검토해본 결과 새로 교체된 중국군이 일반 보병이 아닌 특수부대원들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이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소련군 경비대장은 자신의 휘하에도 특수부대원들을 배속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 후 소련군에서 '절름발이 중위'라는 별명을 가진 복싱 선수 출신의 장교가 파견되었고, 중국군을 상대로 다시 승세를 가져오는 등 난투극이 이어졌다. 상황은 이제 더 이상 국경 군사들 간의 패싸움으로 취급할 수 없었다. 상부에서는 자국군의 자존심이 높아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중국측은 산둥성 출신의 '산둥꼬마'(小山东)라는 별명을 가진 특수부대 소속 초급장교까지 데려와 소련군을 상대했다. '산둥꼬마'는 산둥성에서 자라서 무예를 타고났기 때문에[* [[문화대혁명]] 및 중국의 근대화 때문에 전통적인 무림은 없어졌지만, 제도권으로 편입되어 무술가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각종 무술학교로 재편되었기 때문에 중국의 무술이 소실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군인들의 대접이 좋았기 때문에 무술가들이 대거 입대했다. 현재도 중국의 여러 체육학교의 무술전공 학생들은 군경으로 간다.] 지휘부에서는 단지 소련군의 중위를 이기기 위해서 애먼 장교를 데려와 전바오 섬 경비대로 전출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